홍주 옥터

by 관리자 posted Feb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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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신앙 증거 장소요 최대의 순교 터인 홍주 옥
지역 충남 홍성

신앙 증거 장소요 최대의 순교 터인 홍주 옥


조선 후기의 홍주 옥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한 장소요 순교를 준비하던 의미 있는 장소이며, 최대의 순교터다. 홍주의 순교자 중 교수형 100명, 옥사 13명 등 113명이 옥중이나 그 인근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 수가 없다.홍성군청을 마주보고 바로 왼쪽에 있는 구 홍성 법원 및 검찰청 자리는 조선 시대 홍주 옥이 있던 곳이다. 2009년 현재 공원 조성을 위해 건물이 철거되고 공터로 남아있다. 천주교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1791∼1870년대) 홍주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은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굳게 신앙을 증거한 뒤, 이곳 옥에 수감되어 꿋꿋하게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현재 시복이 추진되는 원시장(1732~1793, 베드로), 방 프란치스코( ?~1799), 박취득( ?~1799, 라우렌시오) 등 세 명과 중기 박해 때의 이여삼(1770~1812, 바오로), 최대종(1789~1839, 요셉), 병인박해 때의 김선양(1808~1866, 요셉) 부부 순교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1791년 신해박해로 체포되어 이듬해에 홍주 지역에서 최초로 순교한 원시장 베드로는 이곳에서 동사하였다. 원시장 베드로는 천주교에 입교한 후 사촌 원시보(1730~1799, 야고보)를 찾아 나선 포졸들에게 잡혀 이곳 옥사에서 세례를 받았다. 갖은 고문을 받았으나 아무리 맞아도 다음 날이 되면 멀쩡해지고 기세가 등등해지자 결국 홍주 목사로부터 추운 겨울밤에 온몸에 물을 뿌려 얼려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 이여삼 바오로는 극악한 형벌을 당하면서도, 10년간이라는 옥고를 치루면서 사형 당하기 전 자기가 자기에게 세례를 주며 순교하였다.


또 이곳에서는 박취득 라우렌시오가 1798년 8월에 체포되어 1799년 2월 29일(음)에 순교하였는데 그는 거의 8개월가량 옥사에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를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기적을 보인 순교자라고 부른다. 엄청난 매를 맞고 다 죽었다고 옥에다 던져 놓았는데도 슬며시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자 나중에는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새끼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고문과 매질에 상한 모든 몸이 깨끗해지는 기적을 보였다고 한다.
홍주의 순교자는 상당수가 모두 복법(伏法, 즉 처형)으로만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순교 형식을 알 수가 없다. 교회의 순교자 증언록을 바탕으로 그중 127명의 순교 형식을 구분해 보면 교수형 100명, 옥사 13명, 생매장 4명, 참수 2명, 미상 8명으로 나타난다. 교수형과 옥사 등으로 113명이 옥중이나 그 인근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홍주·해미 성지 자료집》, 대전교구). 그러나 이곳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홍주의 공동묘지나 청양의 줄무덤 등에 모셔져 있기도 하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보통 교수형은 구멍이 있는 커다란 돌이나 옥벽에 뚫은 구멍, 또는 널판 구멍에 줄을 넣고 순교자의 목을 얽어맨 다음 옥졸들이 반대편에서 줄을 당기는 방법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866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이곳에서 가까운 서산 강당리(강댕이) 출신 김선양 요셉 등 교우 17명이 이러한 방법으로 순교했으며, 죽은 후에 시체는 모두 한 광중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순교자

◆ 순교자 원시장 베드로 (1732∼1793년)  <하느님의 종 125위>
원시장 베드로는 1732년 충청도 홍주 응정리(현 충남 당진군 합덕읍 성동리)의 양인(良人) 집안에서 태어났다. 60세가 가까워졌을 때 사촌 형 원시보 야고보와 함께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고 입교하였다. ‘시장’은 그의 관명(冠名)이다. 본래 성격은 사납고 야성적이어서 호랑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그러나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동안 성격이 변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사촌 원시보는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으나, 그는 체포되어 홍주 관아로 끌려가 매질을 해도 소용이 없자 관장은 그의 몸에 물을 붓고 밖에 내다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하였다. 베드로가 덮어쓴 물은 이내 얼음으로 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주님의 수난만을 생각하였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에게 바쳤으니, 1793년 1월 28일(음력 1792년 12월 17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1세였다.

◆ 순교자 방 프란치스코 ( ? ∼1799년)  <하느님의 종 125위>
방 프란치스코는 충청도 면천의 ‘여’ 고을 태생으로 감사의 비장(裨將)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교우들 사이에는 ‘방 비장’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우연히 고향 인근에 전해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는 누구보다도 빨리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순교자들의 행적을 들으면서 자주 눈물을 흘렸으며, 그들과 같이 순교하기를 간절히 열망하였다.  
1797년의 정사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도 다음 해 홍주에서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많은 형벌을 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때 그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슬퍼하는 교우 두 동료들도 권면하여 거룩한 기쁨을 같이 하였다. 그들 셋은 함께 홍주 읍내에서 1799년 1월 21일(음력 1798년 12월 16일) 순교하였다.  

◆ 순교자  박취득 라우렌시오 ( ? ∼1799년)   <하느님의 종 125위>
충청도 홍주의 면천에서 태어난 박취득 라우렌시오는 한양으로 올라가 지황(사바)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1791년의 신해박해 때 라우렌시오는 고향의 여러 교우들이 체포되어 옥에 갇히자, 자주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관장 앞으로 가서 교우들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797년의 정사박해 때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지만, 아버지가 대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면천 관아에 자수하였다. 그는 모두 1천 4백 대 이상이나 맞았고, 8일 동안 물 한 방울을 마시지 못한 적도 있었다. 옥졸들은 이제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옷을 벗긴 뒤에 밖에 내던져 버렸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나는 굶겨도 죽지 않고 맞아도 죽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목을 매면 죽을 것이오.”라고 옥졸에게 말하였다. 실제로 이튿날 밤에 교우들이 그에게 다가가서 보니 모든 상처들이 기적적으로 나아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를 요술이라고 생각한 옥졸이 새끼줄로 그의 목을 졸라 죽였으니, 이때가 1799년 4월 3일(음력 2월 29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약 30세였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구 법원과 검찰청 자리)
 지리좌표  [홍주 옥터 앞] 북위 36°36′01.0" 동경 126°39′70.6"
 연락처  홍성 성당 (충남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552-11) (041) 633-8891 FAX (041) 634-8891
 홈페이지  홍성 성당 http://px1004.hihome.com
 미사시간  [홍성 성당]
 평일 : (월) 오전 6:00, (화목금) 오후 7:00, (수목금)오전 10:00 (토) 오후 4:00, 7:00
 주일 : 오전 6:00, 9:00, 10:30, 오후 7:00
 교통편  [승용차]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IC에서 29번 도로 홍성읍으로 향한다. 홍성 읍내 군청 옆에 구 홍성법원
 과 검찰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