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생매장터와 안장터

by 관리자 posted Feb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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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주변은 순교자들의 생매장 터
지역 충남 홍성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주변은 순교자들의 생매장 터


홍성 시내의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주변은 순교자들의 생매장터로 추정된다. 생매장 된 순교자들은 물론 옥사나 교수형으로 죽은 순교자들이 안장된 장소로 전통적인 매장지인 숲거리와 그 인근, 즉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인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홍성 순교자들의 순교 형식은 오직 교회의 순교자 증언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데, 여기에 생매장 4명, 참수 2형, 미상 8명 등으로 나타난다(《홍주·해미성지 자료집》, 대전교구). 1868년에 이루어진 유 마르타의 순교는 참수형인지 혹은 교수형인지 불확실하다. 1868년 5월에는 홍주 원머리 출신의 신자들 4명이 천주교 신앙 때문에 동시에 생매장되었다. 최대 생매장 순교자는 9명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홍성 순교자들은 참수형보다는 교수형이나 갖가지 남형으로 순교하였다.


1868년 5월 최법상 베드로, 김조이 루치아, 김조이 마리아, 원 아나스타시아를 비롯한 생매장 추정자 최대 9명이 순교한 생매장터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교회 증언록에는 당시 생매장을 했던 이유를 "많은 교우들을 죽이기 어려우매"라는 데 있었다고 한다. 물론 순교자들은 성안이 아니라 성 밖 어느 장소에서 한 구덩이에 생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사하거나 교수형을 당한 순교자들의 시신이 안장된 장소도 이 생매장터와 거의 같았을 것이다. 최근 증언에 따르면 '홍성의 옛 숲거리는 홍주에서 희생된 동학군과 의병들의 시신을 안장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주교 순교자들이 생매장을 당한 장소도 이 부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없어진 홍성의 숲거리는 1871년의 《홍주목 지도》에도 홍주성의 동문 밖을 흐르는 홍성천 동쪽 건너편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바로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왼쪽 지역이다. 이 숲거리가 홍주성 밖의 전통적인 매장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홍주의 천주교 순교자들은 동학 농민군(1894년)이나 의병(1906년)들보다 적어도 25년 이전에 처형되었으며, 한 번에 순교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순교하였다. 그 렇다고 이들의 시신을 성 밖 여기저기에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868년의 생매장 순교자들은 물론 옥사나 교수형으로 죽은 순교자들이 안장된 장소를 전통적인 매장지인 숲거리와 그 인근, 즉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인근으로 보는 견해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조양문으로 끌려 들어온 많은 교우들은 관청 뜰 안에 있는 나무에 묶여 있다가 동헌으로 끌려가 심한 문초를 받아 죽기도 했고, 옥에서 굶어 죽기도 하였다. 이렇게 죽은 시체는 성 밖으로 내다 버리기도 하였다. 홍주 원정리에 사는 원시장(1732~1793, 베드로)은 이곳 관아에서 모진 혹형을 받고 성 밖에 버려져 얼어 죽었다.
대전교구는 2008년 3월 15일 충남 홍성군 의사총 하천변, 생매장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사제단, 신자 1,000여 명이 참석한가운데 순교자 현양 미사 및 홍주 순교 성지비 제막식을 갖고 홍주 순교 성지를 부활시켜 순교자 삶을 본받기로 다짐했다.

▒ 홍주 의사총(洪州義士塚)


조선 말기 홍성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 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홍주 지역에서는 1906년(병오년)에 전 이조참판 민종식 등과 농민, 유생, 구 관리를 중심으로 홍주성에 쳐들어갔는데 당시 홍성 군수 이교석과 이주승도 처음에는 의병군에 호응할 기미였다가 일본군 다수가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닫고 입성을 막아 부득이 물러난 후 3월 22일에 재차 홍주성에 쳐들어 갔으며 5월 19일에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 후 일본군이 5월 25일부터 홍주성의 의병군을 공격하여 30일부터 본격전이 시작되었으며 그때에 일본군 대포에 의해 조양문이 부서졌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백 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대교리 일대의 냇가와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1949년 4월 5일 홍성 군수와 홍성 경찰서장이 현재 의사총이 있는 부근에서 식수하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하여 노인에게 설명을 듣고 병오 항일 의병 시 전사한 의병군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유골을 모아 이곳에 합장하여 분묘를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합수머리 주변
 지리좌표  [합수머리 부근] 북위 36°36′28.5″ 동경 126°40′20.4″
 연락처  홍성 성당 (충남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552-11) (041) 633-8891 FAX (041) 634-8891
 홈페이지  홍성 성당 http://px1004.hihome.com
 미사시간  [홍성 성당]
 평일 : (월) 오전 6:00, (화목금) 오후 7:00, (수목금)오전 10:00 (토) 오후 4:00, 7:00
 주일 : 오전 6:00, 9:00, 10:30, 오후 7:00
 교통편  [승용차]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IC에서 29번 도로 홍성읍으로 향한다.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의사1교 진입하기 전 우측에 성지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