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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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빈민 구제에 재산을 바친 삽교 지역 최초의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고향
지역 충남 예산

빈민 구제에 재산을 바친 삽교 지역 최초의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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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옥 밖에서 엄청난 큰 돌로 가슴을 내리쳐 턱과 가슴뼈가 부서져 치명한 삽교 지역 최초의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고향이다. 내포 지방 전교 활동과 빈민 구제에 자기 재산을 모두 바쳐 인근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그의 기념비가 있는 이곳은 주례 공소 강당이 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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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에는 상룡과 하룡 마을이 있는데 신자들은 주로 하룡에 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룡에는 주례 공소의 강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7년 예산 본당으로부터 삽교 본당이 분리되면서 공소가 폐지되고 강당은 헐리게 되었다. 이때 이곳 신자들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이곳을 사적지로 만들기로 합의를 보았다. 공소 자체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이 순교한 인언민(印彦敏, 1737~1800, 마르티노)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inunmin-3.jpg 인언민 마르티노는 삽교 지역 최초의 순교자다. 충청도 덕산 주래(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온순하면서도 꿋꿋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상당한 학식도 쌓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던 황사영(黃嗣永, 1775~1801, 알렉시오)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이내 그로부터 교리를 배운 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를 단지에 넣어 삽교천에 던져 버리고 한양으로 올라가 주문모(周文謨, 1752~1801, 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전교 활동을 하였고, 빈민 구제에 자기의 재산을 모두 바쳐 인근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797년에 시작된 정사박해가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마르티노는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청주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으며, 감사의 명에 따라 다시 그의 고향을 관할하던 해미관장 앞으로 이송되었다. 인언민 마르티노는 청주에서 받은 형벌로 인해 걸을 수 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청주에서 해미까지 가는 동안 조정 관리들이 이동할 때 사용하는 말을 타고 가야만 하였다. 해미 옥에서 마르티노는 젊은 이보현(李步玄  1773~1800, 프란치스코)을 동료로 만나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권면하였고, 갖은 형벌과 문초와 유혹 아래서도 변함없이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어쩔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인언민도 이보현과 같이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형리들은 그를 옥에서 끌어내어 매질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중의 하나가 엄청나게 큰 돌을 들어 그의 가슴을 여러 번 내리쳤다. 이내 그의 턱이 떨어져 나가고 가슴뼈는 부서지고 말았다. 결국 마르티노는 이러한 형벌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때가 1800년 1월 9일(음 1799년 12월 15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마지막으로 매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그는 여러 차례 다음과 같이 되뇌었다고 한다."“그렇고말고.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께 바치는 거야.”

■  순교자

◆  인언민 마르티노 (1737∼1800년)  <하느님의 종 125위>

1737년 충청도 덕산 주래(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인언민(印彦敏) 마르티노는 온순하면서도 꿋꿋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상당한 학식도 쌓게 되었다. 황사영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교리를 배운 뒤 한양으로 올라가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장남 요셉을 신부 곁에 남겨두었으며,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집과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였다.
1797년에 시작된 정사박해 때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옥으로 끌려갔다. 청주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고 다시 그의 고향을 관할하던 해미 관장 앞으로 이송되었다. 해미 옥에서 그는 젊은 이보현(프란치스코)을 동료로 만나 언제나 서로를 권면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인언민도 이보현과 같이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를 옥에서 끌어내 매질을 가하기 시작다가 그중의 하나가 엄청나게 큰 돌을 들어 그의 가슴을 여러 번 내리쳤다. 이내 그의 턱이 떨어져 나가고 가슴뼈는 부서지고 말았다. 이러한 형벌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때가 1800년 1월 9일(음력 1799년 12월 15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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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지 정보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용동 2리 중용 마을 
 지리좌표  [기념비 앞] 북위 36°41′30" 동경 126°45′24"
 연락처  삽교 성당(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1구 260) (041) 338 - 1924 FAX (041) 338-1923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삽교 성당]
 평일 : (화금) 오후 7:30, (수목) 오전 10:00, (토) 오후 3:00, 7:30
 주일 : 오전 9:00, 10:30
 교통편  [승용차] 삽교읍 서쪽 충의교를 지나 우측 619번 도로로 직진하다 용동 2리 버스정류소에서 우측 길로
 약 300m 들어가면 용동성결교회가 있다. 교회 바로 뒤편에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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