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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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15:50

홍주 관아와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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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신앙 증거 터인 목사의 동헌 근민당과 진영장의 경사당
지역 충남 홍성

신앙 증거 터인 목사의 동헌 근민당과 진영장의 경사당


홍성 지역은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신앙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 내포 지역의 일부로, 충청도 지역에서는 공주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할 정도로 교세가 성한 곳이었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洪州牧)을 두어 목사(牧使, 정3품)가 주재했던 홍성은 예로부터 교통, 체신, 행정의 중심지요. 국방의 요새지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1759~1801, 루도비코 곤자가)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전해지고, 많은 교우들이 있던 곳이었다.  


홍주 성지는 기록상으로 211명(또는 212명)의 순교자가 있고, 무명의 순교자까지 거의 700여 명이 순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가 많은 곳이다. 홍주 토포청(종3품의 영장 겸 토포사 관할)에서 파견된 포교와 포졸들에 의해 끌려온 순교자들은 갖가지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굳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 장소는 목사의 동헌, 즉 목사가 집무를 보던 근민당과 홍주 진영의 동헌, 즉 토포사가 겸하던 전영장(前營將)이 집무를 보던 동헌인 경사당 앞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중에서 근민당은 현존하는 목사의 동헌인 안회당(사적 제231호, 현 홍성군청사 경내)이 아니라 그 서쪽에 있던 사달정(四達亭, 옛 政事堂)의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또 전영장의 동헌인 경사당은 지금의 동문(즉 조양문) 서쪽에 위치한 한국통신 건물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초기와 중기 박해 때의 순교자들은 목사와 영장 앞에서 신앙을 증거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 대부분은 포교들에 의해 영장 앞으로 끌려가 경사당 앞에서 신앙을 증거한 것으로 나타난다. 조양문으로 끌려 들어온 많은 교우들은 관청 뜰 안에 있는 나무에 묶여 있다가 동헌으로 끌려가 심한 문초를 받아 죽기도 했고, 옥에서 굶어 죽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홍주에는 목사가 진영장을 겸할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문관(文官)인 목사와 함께 무관(武官)인 진영장이 별도로 파견되었고, 목사의 동헌과 진영의 동헌이 별도로 존재하였다. 이중에서 목사의 동헌인 근민당은 1870년의 대대적인 읍성 개수 때 현재의 동헌인 안회당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또 진영의 동헌인 경사당은 1870년에 12칸으로 신축되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볼 때, 천주교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한 장소는 지금의 안회당 앞이 아니라 기존의 근민당 앞 그리고 전영장의 집무처인 경사당 앞으로 보아야 한다.
기록상으로 홍주 지방에서 처음 순교한 사람은 1793년 원시장(1732~1793, 베드로)이다. 홍주 원정리에 사는 원 베드로는 이곳 관아에서 모진 혹형을 받고 성 밖에 버려져 얼어 죽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80여 년간 잡혀 온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어 죽어갔던 순교의 현장이다.

◆ 목사의 동헌(근민당)


이곳은 조선 시대 때 홍주 목사의 동헌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본래의 동헌(즉 근민당)은 현존하는 동헌(즉 안회당, 사적 231호)이 아니라 서남쪽에 위치해 있었던 사달정(四達亭, 7칸, 옛 政事堂)의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박해 시대 때, 목사의 동헌 앞에서는 특히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을 받은 지도층 신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순교 선조들은 끊임없이 가해지는 곤장과 주뢰형을 신앙으로 극복하였다. 2008년 4월 18일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침 이곳을 포함하여 다섯 곳에 신앙증거터 표지석을 설치중이었다.

◆ 전영장의 동헌(경사당)


홍주 진영(즉 충청도 前營)의 동헌인 경사당은 지금의 동문(즉 朝陽門) 서쪽에 위치한 한국통신 건물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초기와 중기 박해 때의 순교자들은 목사와 영장 앞에서 신앙을 증거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병인박해기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포교들에 의해 영장 앞으로 끌려가 경사당 앞에서 신앙을 증거한 것으로 나타난다.

 

▒  외로이 깨어 (홍성 읍성에서)  <김영수> ▒
성벽의 돌들 위로 
이슬 붉게 빛나는 아침 
나는 무엇으로 죽어
풀잎 하나에 영롱히 설까요 
햇살들 벌거벗고 성벽 달리는 곳에서
나는 외로이 깨어
흙 한 줌 쥐고
가난해지며 가난해지며 조양문(朝陽門) 넘어설 때 
나는 비로소 멀리에서 돌아와
생생한 목마름으로 서는 것입니까
이제 들뜬 소리들을 접고 
가슴을 눈물에다 헹구어내며 
침묵 흐르는 숲에 귀 기울이며
소망의 창 활짝 열까요
어색한 나의 몸짓에도
성벽의 그늘 한 자락 어리기를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홍주 동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홍성군청지)
 지리좌표  [홍주 아문 앞] 북위 36°36′06.8″ 동경 126°39′70.6″
 연락처  홍성 성당 (충남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552-11) (041) 633-8891 FAX (041) 634-8891
 홈페이지  홍성 성당 http://px1004.hihome.com
 미사시간  [홍성 성당]
 평일 : (월) 오전 6:00, (화목금) 오후 7:00, (수목금)오전 10:00 (토) 오후 4:00, 7:00
 주일 : 오전 6:00, 9:00, 10:30, 오후 7:00
 교통편  [승용차]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IC에서 29번 도로 홍성읍으로 향한다. 홍성 읍내 군청이 바로 동헌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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