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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8 09:48

정산 관아와 형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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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하느님의 종 이도기 바오로가 정사박해 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순교 터
지역 충남 청양

 하느님의 종 이도기 바오로가 정사박해 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순교 터


칠갑산맥이 뻗어 있는 청양군 정산 관아는 하느님의 종 이도기(李道起, 1743~1798, 바오로)의 순교터다. 그는 재산을 모두 비신자들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으며, 정사박해 때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갖은 문초와 혹독한 형벌을 받고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매를 맞았다. 나중에는 그의 몸을 잔인하게 짓이겨서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갖추지 못하였다.
정산 관아터는 현재 정산면 사무소가 있는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다. 형장은 지금의 정산 장터로 추정된다. 정산중학교에서 남동쪽으로 난 골목이 옥거리다. 정산중학교를 뒤로하고 왼쪽길이 옥거리 2길이고, 오른쪽 일신문구점 옆길이 옥거리 1길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큰길가에 있는 농협주변이 형장터로 추정된다.


1743년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난 이도기 바오로는 고향에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하였다. 본래 그는 글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만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후 바오로는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비신자들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또 천주교 신앙 때문에 여러 가지로 위협을 받게 되자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며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가족과 함께 청양을 떠나 산 너머에 있는 정산으로 이주한 뒤, 그곳 옹기점에 터전을 잡았다.
1797년 정사박해 때 체포되었다. 이내 포졸들은 십자고상과 교회 서적 몇 권을 찾아낸 뒤, 그에게 천주교 신자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하면서 매질을 가하였다. 하지만 그는 배교를 강요하는 관장 앞에서 용감하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곤 하였다.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하느님을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는 천사의 말씀을 전해 주는 목소리를 듣고는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798년 6월 10일 아침, 포졸들이 와서 사형 집행일이 되었다고 알려 주자, 바오로는 기쁨에 넘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윽고 그는 포졸들에게 이끌려 정산 형장으로 갔고, 그곳에서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주변에 모인 비신자들까지 이 형벌에 가세하였다. 바오로는 여러 차례 실신하였고,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매를 맞았다. 그리고 버려진 채로 있게 되었다. 이틀 후 저녁 무렵 아직도 죽지 않았으면 아주 죽여 버리고 오라는 관장의 명령에 따라 포졸들은 그의 몸을 잔인하게 짓이겨 버렸다. 이제 바오로의 몸은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았으니, 그때가 1798년 7월 24일(음 6월 12일)로, 순교 당시 그의 나이는 55세였다.

▒ 정산일기(定山日記)
이도기(李道起, 바오로)의 순교 전기(殉敎傳記). 충청도 정산(定山)에서 체포되어 1798년 6월 12일 순교하였기 때문에 정산일기[뎡산일기]라 한 것 같다.《정산일기》는 원래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에 수록된 것이 한글로 옮겨지면서 따로 필사본으로 전해진 것 같다. 모두 54면에 걸쳐 한글로 쓴 이 책의 크기는 18.8㎝×12.3㎝이고, 현재 남아 있는 《정산일기》는 블랑(Blanc, 白圭三) 주교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  순교자

◆ 이도기 바오로 (1743∼1798년)   <하느님의 종 125위>
1743년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난 이도기 바오로는 고향에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하였다. 본래 그는 글을 알지 못하였지만, 천주교의 덕행만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후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비신자들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며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가족과 함께 청양을 떠나 산 너머에 있는 정산으로 이주한 뒤, 그곳 옹기점에 터전을 잡았다.
1797년, 바오로의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정사박해가 발생하여 6월 8일 체포되어 정산 관아로 끌려간 그는 6월 10일 아침, 정산 형장으로 가서 갔고, 그곳에서 비신자들까지 가세한 혹독한 형벌을 받아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았으니, 그때가 1798년 7월 24일(음력 6월 12일)로, 순교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관아 터]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496-1 (칠갑산로 839) 정산면 사무소 자리
 지리좌표  [관아 터] 북위 36°24′88.1″ 동경 126°56′71.8″
 [옥거리 입구] 북위 36°24′82.9″ 동경 126°56′80.0″
 [형장 터] 북위 36°24′64.4″ 동경 126°57′00.2″
 연락처  청양 성당(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1) (041) 943-6123 FAX (041) 943-4628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청양 성당]
 평일 : (월) 오전 6:00 (화수) 오후 7:00 (수) 오전 10:00 (토) 오후 3:00
 주일 : 오전 10:00 
 교통편  [승용차]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정안IC로 나와서 23번 국도이용하고 다시
 36번국도 이용하여 정산면 사무소로 진행한다. 또는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 로 나와서 29번 국도 이용
 하여 홍성, 청양을 지나 정산면으로 진입한다. 정산면 사무소가 관아 터이며, 그 앞 정산중학교에서 남
 동쪽으로 난 골목이 옥 거리이다. 정산중학교를 뒤로하고 왼쪽길이 옥거리 2길이고, 오른쪽 일신문구
 점 옆길이 옥거리 1길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큰길가에 있는 농협(정산면 서정리 157-9) 주변이 형장
 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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